
하지만 반전이 있다. 아파트 단지 안에서 바라보는 상가 건물은 그저 못생긴 뒤통수에 불과하다. 상가를 도로 쪽으로만 향하게 설계했기 때문에 아파트 안으로 드나드는 사람들의 시야에는 상가 뒤쪽의, 아무런 장식 없는 시멘트 덩어리만 보인다. 40여 년의 세월이 내려앉은 무심한 시멘트 벽체에 에어컨 실외기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보니 미관상 좋을 수가 없다.
이 대조적인 모습을 통해 우리는 1970년대 당시, 이 아파트 단지를 어떤 관점으로 설계했는지 추정해볼 수 있다. 설계 당시 활용한 `조감도`는 단지 외부에서 바라보는 관점이었을 것이다. 조감도라는 말뜻 자체가 그렇다. 날아다니는 새의 관점으로 아파트 단지를 바라보는 모습을 상상하며 설계한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은 6차로 도로 건너편 정도의 거리에서 단지를 바라볼 때에야 비로소 조감도에서 의도했던 모습을 경험할 수 있다. 당시는 또 경제성장으로 자동차 소비가 늘기 시작하며 도로 인프라스트럭처가 형성되던 시기다. 따라서 자동차를 중심으로 한 도시계획이 지배적이었다. 자동차로 쌩쌩 달리며 바라보는 시야는 조감도의 관점과 큰 차이가 없다. 1970~1980년대부터 이어져온 우리의 아파트 단지와 모더니즘의 건축과 도시계획은 바로 이런 관점에서 시작됐다.
이에 대한 비판은 1950년대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을 쓴 제인 제이컵스를 필두로 얀 겔, 윌리엄 화이트에 이어 제프 스펙 등의 학자로 이어지며 전 세계적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여름, 스페인 남동부의 항구도시인 발렌시아에서 열린 `유럽 장소 만들기(Place making) 주간 2019`라는 이름의 콘퍼런스에 모인 400여 명의 `장소 만들기` 전문가 중 한 팀은 "우리는 새가 아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이어져 온 새의 관점에서 조감도를 그리는 시각으로는 진정 인간에게 행복한 도시를 만들 수 없다는 의미였다. 우리는 새가 아니고, 자동차도 아니다. 우리는 두 다리로 걷는다. 키 높이의 시야로 사물의 모습을 눈에 담는다. 우리가 진정 경험하는 도시와 조감도로 그려지는 그림과의 격차는 너무나도 크다.
`걷기 좋은 도시`라는 개념은 이런 철학에서 나왔다. 이 철학은 단지 모든 곳을 걸어 다니기 편리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행위인 걷기에 기반한 관점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이 걷기 좋은 도시의 철학이다. `우리는 새가 아니다`는 당연한 사실이 도시를 만드는 과정에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길 바란다.
[음성원 도시건축 전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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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17, 2020 at 10:04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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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라이프] 우리는 새가 아니다 - 오피니언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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