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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사이트, 우리 심성과 삶 속의 삼신 할매 - 에큐메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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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기를 점지해준다고 알려져 있는 삼신할매에 대한 상상도 ⓒGetty Image

삼신 할매에 대한 믿음과 그에 따른 신앙행위는 한반도 곳곳에 두루 퍼져 있음이 확인된다. 우리는 그것이 굿풀이 또는 서사무가의 형태로 전해지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무속이 갖는 민중들과의 친밀성과 밀착성에서 삼신 할매의 의미를 읽어내야 할 것이다. 삼신 할매 신화라는 ‘텍스트’를 형성하여 전해오게끔 한 삶의 ‘콘텍스트’[생활세계]는 민중들의 고달픈 나날의 삶이 펼쳐진 일상의 생활마당이었다. 이것은 삼신 할매 속에 민중들의 집단 무의식이 보이지 않게 갈마들어 형상화되었음을 지시한다.

거기에는 가장 힘이 없는 계층인 민중들이 온갖 억압과 굴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터득한 생존의 지혜가 결과 무늬로 새겨져 있다. 양반들만이 인간으로 대접 받으며 사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속에서 서민과 상놈, 특히 서민여자는 태어나면서부터 고생을 감내하도록 운명지어졌다. 서민 여자들은 이미 잉태되면서부터 ‘외인’ 또는 삭제되어야 할 혹으로 치부되었으며, 여성으로서 죽음과 남/타처(他處)[또는 외지(外地)]와 더불어서 삼대 부정(不淨)의 하나로 간주되었다.(1)

여자로 태어나 시집살이를 비롯한 온갖 고생살이(2)를 다 경험하는(3) 가운데에서도 살아남은 할머니는 끈질긴 민중들의 삶의 지혜를 자기 안에 간직하고 있다. 이렇게 할머니로 대변되는 민중들의 생존지혜와 삶의 문법을 나는 이 땅의 생활세계적 이성으로서 <살림살이의 이성>이라 이름하고자 한다. 그리고 한국 민중들은 이런 생존지혜 속에 살아오면서 한국 민중 특유의 의식구조와 인식의 틀을 자기 안에 형성하게 되는데, 그것이 이른바 한과 정과 신명[풀이]의 의식구조이다. 그것은 민중들의 삶의 마당인 굿문화에서 신성성(神聖性)과 제의성(祭儀性) 그리고 놀이성의 형태와 방식으로 표출되어 전해져 내려왔다. 아래에서 우리는 삼신 할매가 담고 있는 이러한 상징성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삼신 할매와 굿문화

삼신 할매는 민중들의 삶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민속신앙 대상의 한 형태이며 그에 대한 신앙행위는 일상생활에서 민중들 사이에 가장 널리 퍼져 있었다. 삼신 할매에 대한 믿음이나 기원은 유교나 불교와 같은 고급종교에서 나타나는 신앙형태나 교리가 아니라 무속 또는 무교라고 칭해지는 민중종교에서 행해진 아주 일반화된 믿음 행위였다. 그것은 특정 신분에 국한되어 실행되지 않고 양반이나 중인, 상놈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행해졌다. 그것은 나라가 강요하며 권장하는 고급종교에-그것이 어떤 다른 종교로 바뀌어도-상관없이 한국인의 삶과 생활세계 속에 깊이 뿌리내려 그 삶을 유지·지탱시켜주며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신화이며 일상적 삶의 이야기이다.

한국 무속은 고통에 대한 해결책을 현실적으로 추구하는 민중종교라 할 수 있다. 무속에서는 이 세상이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에게 고통이 생긴다고 본다. 즉 이상적인 세계와 지금 여기 눈앞에서 벌어지는 비정상적인 세계 사이에 놓인 부조화가 그러한 세상 안에 사는 인간들에게 고통을 가져다준다고 본다.

본래 신령과 인간 그리고 자연이 하나로 조화를 이루고 있던 이상적 세계가 조화를 잃어서 이 세상의 사람들이 여러 가지 환난과 고통을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무속은 고통을 당하는 자의 관점에서 본 한(恨)을 중심으로 삼아, 한을 실감나고 구체적이며 현실적으로 다루는 종교이다. 그런 의미에서 무속은 ‘당하는 자’들의 종교라는 편파성을 지니며, 민중중교 혹은 서민종교로 분류된다.(4)

삼신 할매가 전승되는 콘텍스트가 민중문화인 굿문화임에 주목할 때 우리는 삼신 할매가 한이 맺히고 살이 끼고 부정 탄 민중들의 일상을 유지시키고 보호해주는 친밀한 존재임을 알 수 있다. 그것도 가장 연약한 존재인 어린 생명으로부터 빽[뒷배경]이 없어서 온갖 멸시와 천시 속에 고통을 당하는 민중들을 두루 보살펴주는 신령스런 존재이다. 굿판에서 영험이 있는 신령으로 기도의 대상이 되는 신들을 볼 때 살아서 가장 한이 많았던 인물-이를테면 최영 장군, 사도세자, 바리공주 등-이었음을 생각할 때 우리는 ‘삼신 할매’의 ‘할매’라는 호칭을 그저 다정하고 친밀한 것으로만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평범한 서민의 삶을 살면서 온갖 한(恨)과 고통, 멸시와 천시를 삭이며 살아온 할매이기에 누구보다도 일상사에서 서민들이 당하는 한을 잘 알고 그 처지를 이해할 줄 아는 신령스런 존재로서 삼신 할매가 생각되었던 것이다. 한을 당해본 사람만이 인정 많은 사람이 될 수 있듯이 말이다.

민중들 삶 속의 할매: 인정의 표징

삼신 할매 굿풀이에서 드러나고 있듯이 거기서 ‘할매, 할망’은 나이를 많이 먹어 기력이 없는, 허리 꼬부라진 노파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다. 민중들의 기본 관심사인 삶과 죽음[생과 사], 즉 생명을 점지 받아 잉태되어 온전한 몸으로 태어나서 아무 탈[병] 없이 건강하게 자라 행복하게 살다가 죽는 삶의 전 과정을 도맡아 관장하는 신령을 민중들의 삶에서 가장 친근한, 인정 많은 인물인 할머니와 연관시켜 의인화시켰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한국 서민들의 삶에 ‘할머니’가 가지는 삶의 맥락을 되새겨 보아야 한다.

할머니는 누구보다도 가장 어리고 힘없는 어린아이[손자․손녀]를 위해 아무 조건 없이 그들 편을 들어주며 모든 것을 다 베푸는 정이 넘치는 인물의 표본이다. 젊음과 미, 생산력과 노동력을 강조하는 서양에서 할머니하면 으레 ― 그들의 어린이 교육용 동화책에서 많이 등장하듯이 ― 마귀할멈, 사악한 노파, 주책없이 제 욕심만 찾는 할망구로 묘사되고 있다. 그에 비해 우리의 전승설화에서 삼승할망구 외에도 할머니는 온갖 고초를 다 겪어 삶의 지혜를 간직한, 온화하고 이해심 많은 노인으로 기술된다. 이것은 일상생활에서의 할머니의 역할과 무관하지 않다.

할머니는 일상에서 삶과 죽음을 가장 가까이서 보며 관장하는 인물이다. 어린아이의 출생과 육아에서 시작하여 집안의 큰일인 관혼상제에 이르기까지 일상의 일처리가 문자로 전승된 지침서에 의해 수행되지 않고 구전에 의지하는 민중서민들에게는 모든 것을 함께 하면서 실제로 일을 처리한 경험자인 할머니의 존재는 대단히 중요했다. 남자들이 의례를 주관하긴 하지만 그 모든 사전준비는 여인들의 몫이고 이러한 여인네들의 준비를 음으로 양으로 이끄는 사람은 할머니였다.

아이가 태어날 때 아이를 받는 산파역으로부터 할머니의 역할은 시작된다. 육아경험이 전혀 없는 며느리나 딸은 아이의 조그마한 이상에도 놀라지만 할머니는 모든 것을 다 아는 경험자로서 아이의 보육에 든든한 길잡이가 된다. 젊은 며느리가 농사일을 하러 밭에 나가면 아이는 할머니 담당이 된다.

아이들은 할머니의 보호 아래에서 옛날이야기 들으며 할머니로부터 기초교육을 받았다. 교육의 기회가 없어서 배운 것이 없고 글도 모르지만 한평생 들은 집안의 유래와 선조들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고향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꾼도 바로 할머니이다. 아이들이 아프면 잠을 안 자고 옆에서 ‘내 손은 약손이다’하며 배를 쓸어주고 땀을 닦아주며 밤을 새는 사람도 할머니이다.

할머니는 약자들의 대변자이다. 할머니는 어린아이들에게는 인자함과 자비스러움의 상징이다. 할머니에게는 어리광을 부려도 되고 떼를 써도 된다. 억울한 일이 있으면 할머니 무릎에 엎어져 실컷 울어도 되고 못된 짓을 보았으면 고자질해도 되고 분통이 터지는 일이 있으면 할머니 앞에서 분풀이를 해도 된다.

할머니는 모든 것을 들어주고 편들어주고 위로해 주고 용기를 북돋아 준다. 할머니는 잘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아이들의 편이 되어 아이들로 하여금 자신의 입장에서 보고 듣고 당한 것을 다 이야기하게 한다. 한마디로 말해 우리의 삶에서 ‘정 많은 사람’의 표징은 할머니이다. 할머니는 더디며 한없이 느긋하고 조금은 미련한 듯 보이는, 한없이 착한 ‘인정 많은 사람’으로서 고향에 대한 상징으로 한국인의 뇌리에 새겨져 있다.

한국인들은 ‘정’을 가장 한국인다운 한국적 심정으로 꼽는다. ‘한국 사람은 착하다’라고 말할 때에 이 ‘착하다’는 말도 그 속내에는 ‘정이 많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한국인은 소위 마음이 통하는 이상적인 인간관계를 지칭할 때 흔히 ‘인간적인 관계’라고 말하며, 여기서 인간적인 관계의 핵심을 ‘정이 통하며 정으로 맺어진’ 관계로 본다.(5)

정(또는 인정)이 많은 사람이란 남에게 정을 많이 느끼거나, 경험하거나 또는 남에게 정을 많이 주는 사람을 말한다. 인정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는 말에서 뜻하는 바와 같이 남의 어려움이나 고통을 공감하고 공유하는 데서 출발한다. 따라서 정이 많은 사람의 성격특성은 일차적으로 남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공감하는 경향성이 높은 사람을 말한다.

인정이 많은 사람은 무엇보다도 남을 사랑하고 도와주며[애타성], 남의 어려움이나 감정, 처지에 대한 감정 공감과 관심[타인 관심성]을 보이는 특성을 지닌다. 자선행위와 고마움이 인간적인 개념인 인정으로 승화되기 위해서는 그 행위를 하는 사람의 인간성이 연약하고 우직하며, 실속 없이 착하고, 혹은 미련해야 한다는 특수성이 요구된다. 우리는 이러한 특성을 ‘인간적 연약성’과 ‘미련하며 착함[愚善性]’의 범주로 수렴할 수 있다.(6)

한국인의 심리에 대한 연구 결과에서 나타나는 정의 심리적 구조, 정의 대상, 정의 인간적 특성을 볼 때에도 우리는 할머니가 이러한 ‘정의 본’임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인의 심성으로서의 정이 오랜 역사의 풍랑을 헤쳐 오며 생긴 민족적 특성이라면 할머니에게 붙은 ‘미련하며 착한’, ‘정 많은 사람’이라는 명명의 배경에는 그의 한(恨)많은 삶의 역정이 녹아 있다. 이렇게 자신의 불행한 생활세계에서 겪는 한(恨)과 고통을 살림의 지혜로 전화시켜 정이 많은 할머니가 된, 한풀이의 살림살이 이성의 독특함은 뒤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삼신’ 속의 숫자 ‘3’의 관념

우리는 단군신화에서 이미 ‘삼신(三神)’이 등장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고조선 건국신화에는 환인·환웅·환검[단군왕검]이 삼신으로 부·자·손 관계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 ‘삼신’이라는 표현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숫자 ‘삼(3)’이다.

우리민족이 유난히 숫자 ‘3’을 좋아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는 생활 속에서 무의식 중에 어떤 수를 선택하거나 일부러 피하기도 하는 특정한 수 관념에 놓여 있다. 우리뿐만 아니라 세계의 모든 민족은 수와 관련된 독특한 문화양상을 가지고 있으며 그 문화권에 따라 독특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리 민족은 특히 ‘3’에 대해 특별한 수 관념을 갖고 있다. 유달리 3을 좋아한 우리 민족의 수 관념은 단군신화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환인이 인간세상인 3위 태백을 내려다보았고 천부인 세 개를 가지고 다스리게 한 것도, 환웅이 장수 세 사람과 백성 3천 명을 거느리고 태백산에 내려와 인간의 360여 사를 맡은 일, 곰이 삼칠(3․7)일 만에 사람으로 화한 것 등등이 그렇다.(7)

그러나 단군신화에 나타난 3이라는 수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환인·환웅·환검[단군왕검]의 삼신이다. 여기서 삼신은 셋이면서 실은 하나라는 삼일신(三一神)적인 존재로 표현되고 있다. 아버지인 환인은 아들인 환웅에게 초월자의 의지를 담아 지상에 내려 보내는데 아들인 환웅은 여전히 신이다. 이 환웅은 인간으로 변한 곰과 혼인하여 사람인 단군을 낳는다. 이 단군은 나중에 아사달의 산신이 된다.

민속문화인 굿문화도 ‘3’이라는 수리체계와 그 원리에서 행해진다. 이 3수원리가 신성성을 중시하였을 때는 ‘삼신(三神)’이란 존재와 용어로 표현되며, 나를 있게 해준 그 어떤 신성(神性)과 생명을 강조할 때는 ‘삼신 할머니·삼신 할매’란 친숙한 존재로 민중 곁에 오게 되며, 타종교(불교)와의 습합현상에서는 삼불제석(三佛帝釋)으로 변용되기도 한다. 놀이를 이루는 가·무·악(歌舞樂)도 3박자·3채·3진3퇴·소삼대삼(小三大三)·추임새·3기법형식(만중삭)·3음 등의 3이라는 수리체계가 기본을 이루고 있으며, 대동놀이의 훌륭한 기제인 줄다리기용 용줄 제작은 3줄꼬기를, 경기규칙은 삼세판을 기본으로 한다. 또한 세상과 삶을 인식한 인식체계나 가치지향에 대한 의지표현은 3태극·3족오·3번 꺾인 만(卍)자문양으로 도상화하였다.

민중들은 3이란 수리체계에 투영된 인식체계와 가치지향에 대한 기운을 늘상 보는 문양과 도상을 통해 공급받고, 3박자 중심의 놀이를 통해 생기를 극대화시킬 수 있었으며, 생명을 주신 삼신 할머니와 삼신에 대한 믿음은 생명력 강화와 삶에 대한 끈기를 공급해 주었다. 이처럼 3의 문화를 바탕으로 하여 이룩된 굿문화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삶에 신명을 불어넣는 데 기여하였다.(8)

한국인은 유난히 ‘3’이라는 숫자에 집착한다. 가위 바위 보를 해도 세 번은 기본으로 해야 한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삼년상을 치르고, 장사를 지내면 사흘 만에 삼우제를 지낸다. 고사를 지내도 ‘고시레’는 세 번 해야 하고, 동제(洞祭)를 지내도 온통 ‘3’이라는 숫자와 연관을 짓는다. 술도 석 잔, 밥도 세 그릇, 나물도 세 가지, 사흘 전부터는 목욕재계하고 부부관계도 삼가야 한다는 등, 수없이 많은 것을 3과 연관짓는다. 그리고 신라의 성산도 세 개요, 백제가 흥할 때에는 부악, 오악, 일산의 삼신이 서로 오가며 놀았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그야말로 한국인의 정신세계는 온통 ‘3’이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9)

이런 삼신 할매의 상징성을 배경으로 하여 아래에서 우리는 민간에 구전으로 전승되어 내려오는 삼신 할매라는 신화를 해석학적으로 풀이하려고 시도해본다.

미주

(미주 1) 참조. 김열규, 『한국의 문화코드 열다섯 가지』 (서울: 금호문화, 1998), 240 이하.
(미주 2) 민중들에게는 삶 자체가 마음고생, 몸고생, 잠고생, 일고생 등 ‘고생살이’였다; 참조. 임재해, 『한국민속과 전통의 세계』 (서울: 지식산업사, 1991), 396.
(미주 3) ‘경험하다’의 우리말은 ‘치르다’이다.
(미주 4) 참조. 강영옥, <고통>, 우리말철학사전 발표회(2005.6.4.) 발표원고.
(미주 5) 참조. 최상진, 『한국인 심리학』 (서울: 중앙대 출판부, 2000), 42 이하.
(미주 6) 중요한 사실은 인정이 합리적인 자선보다는 이러한 보다 인간적인, 즉 비합리적인 인간 특성 속에서 발생하는 한국인의 특수한 사회 심리 현상이라는 점이다. 한국인의 ‘우리성’이 정을 바탕으로 한 개념이라는 사실을 주시할 때, 한국인의 우리성은 곧, 합리적인 혹은 공식적 관계 속의 우리나 서구적 사태 상황적 동질성에 기초한 우리가 아닌, 탈합리적, 인간적 관계 속에서 정을 바탕으로 한 개인간의 인간 지향적 연계 단위[과업 지향적이 아닌]임을 알 수 있다. 참조. 최상진, 같은 책, 59.
(미주 7) 참조. 구미래,  제1장 <수>, 『한국인의 상징세계』 (서울: 교보문고, 1992), 11〜36.
(미주 8) 참조. 박흥주, <삼신세상의 구현체로서 굿>, 『한국의 생명담론과 실천운동』, 세계생명문화포럼_경기2004 자료집(증보판), 2005, 317〜341, 318/9.
(미주 9) 참조. 한상우, 『우리 것으로 철학하기』 (서울: 현암사, 2003), 95 이하.

이기상 명예교수(한국외대 철학과)  saemom@chol.com




July 05, 2020 at 03:33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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