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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 수면 아래 우리가 손잡을 때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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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혜 작가. 창비 제공
이주혜 작가. 창비 제공
자두 이주혜 지음/창비·1만4000원 <자두>는 2016년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한 이주혜(사진) 작가의 첫 경장편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 ‘나’는 번역 일을 하며 남편과 평온한 삶을 살고 있었다. ‘로맨스 그레이’의 현신이던, 자상하고 따뜻한 시아버지가 아프기 전까지. 담도암에 걸린 시아버지는 병세가 심해지면서 섬망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다. 병원에 입원한 시아버지는 자꾸만 옛날 몰래 따먹었던 자두를 먹고 싶다고 떼를 쓰고 간병인 영옥에게 욕을 퍼붓는다. 자신을 딸처럼 대했던 살갑던 시아버지의 속마음도 드러난다. “저 애가 우리 집에 시집와서 지금껏 뭐 한 일이 있나? 박사님과 결혼하면서 열쇠 세 개를 해왔나? 애를 낳았나? 저 애 때문에 우리 집 귀한 손이 끊겼다.” 그 순간 ‘나’는 시아버지가 그동안 자신을 태양 같은 아들을 훔친 “도둑년”이자 재생산의 도구로밖에 보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다. 게다가 남편, 시아버지와 ‘우리’가 아니었다는 것도. 자신이 혼자 원 밖으로 밀려난 상황에서 남편은 그저 질끈 눈을 감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비참한 상황에서 손을 잡은 사람은 시아버지의 간병인 영옥이다. 두 사람은 병원 옥상에 올라가 말 없이 담배를 피우고, 그 순간 눈을 마주치고 동시에 웃음을 터뜨린다. 그때 ‘나’는 “어떤 말도 나누지 않았지만 모든 것을 말해버린 기분”을 느끼게 된다. 두 사람의 옥상 장면은 소설 앞쪽에 인용된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의 지은이 에이드리언 리치와 엘리자베스 비숍이 함께 차를 타고 가는 장면과 겹친다. 처음 단둘이 있는 공간에서 그들은 “자기 이야기가 이해받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처럼 ‘어쩌다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를 말하고 있었다.”(에이드리언 리치) 2일 <한겨레>와 전화통화에서 이주혜 작가는 “소설 주인공처럼 실제로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번역을 했고 그걸 마치자마자 이 소설을 썼다”며 “이 책에서 리치가 말한 ‘레즈비언 연속체’(여성간 다양한 친밀한 관계)라는 개념과 리치와 비숍의 관계를 통해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여성 연대를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가 소설로 불러낸 은아(나)와 영옥 그리고 리치와 비숍, 그들이 이해하고 교감하는 순간은 각각 다른 시공간을 살아온 여성들이 연결되는 지점이다. 가부장제 안에서 고통받는 이들이 서로를 구원할 수 있다는 희망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사진 창비 제공



September 04, 2020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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