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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남의 집 드나드는 닥터 홍 ⑧홍 선생, 너무 외로워 “여보세요. 홍 선생님. 저 강현식(가명)입니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집에 못 가겠어요. 좀 도와주세요.” “네? 어디세요?” “○○역 근처예요.” “정확히 어디신지 알려주시면 지금 갈게요. 도착할 때쯤 전화 다시 드릴게요. 꼭 받아주세요.” “알겠어요.” 일요일 아침 울린 전화가 단잠을 깨웠다. 고혈압과 속쓰림 증상으로 가끔 우리 병원을 찾는 분이었다. 70살 깡마른 독거노인으로 진료를 오랫동안 하지는 않았지만 깊은 이야기를 나누어서 항상 마음이 쓰이는 분이었다. 술을 좋아해 술을 마시면 정신 못 차릴 정도로 마시는 것이 자신의 문제라고 했다. 그는 “나와 만나며 음주를 절제하고 있다”고 했고, 나도 “조금씩만 드시라”고 지속적으로 말씀드렸다. 긴 노숙과 투병생활을 하며 정처 없이 살아오다 지금에 이르렀지만, 요즘은 복지관에서 노인 공공일자리에 참여하고 동네 여러 문화행사에 다니며 재밌게 생활하고 있었다. 가끔 친구가 하는 주말농장에도 찾아가 놀다 온다고 웃으며 말했다. 홀로 고립되어 사는 분들을 많이 보아 그런지 사회생활을 활발히 하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 서로의 출근길에 종종 마주쳐서 반갑게 인사하는 사이가 되니 환자라기보다는 동네 이웃으로 느꼈다. 왜인지 만날 때마다 이런 전화가 올 것만 같은 예감이 있었는데, 오늘이 그날이었다. 약속이 오후에 있어 오랜만에 늦잠을 자려고 했지만 서둘러 일어서지 않을 수 없었다. 그분을 모시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몰라 재빨리 외출 준비를 하고 나가 택시를 타고 전화를 다시 걸었다. 밤새 술을 마신 상황이라 대화가 잘 안되고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다. 내가 잘 아는 골목에서 술을 마셔 다행이었다. 만취해 길바닥에 주저앉은 노인을 보았다. 그간 정중하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오줌 지린내가 코를 스쳤다. 가끔 스쳐 지나가던 24시 해장국집이었다. 식당 아주머니가 나와 그 노인에게 핀잔을 줬다. “제가 잘 모시고 갈게요. 죄송해요.” 타고 온 택시 기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어르신을 태웠다. 오줌을 지려 의자가 더러워지니 기사님께 죄송했다. 기사님이 한마디 하는 거 아닌지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별 말씀 없이 집까지 태워주셨다. 그렇게 처음 그분 집을 찾았다. 깊숙한 골목에 위치한 빌라였다. 그분의 인상처럼 적당히 정리된 집이었다. 옷가지도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 깨끗한 것은 아니지만 너저분해 보이기보다는 물건들이 있어야 할 곳에 있는 인상이었다. 작은 텔레비전, 밥솥, 언제 개었는지 모르는 이불. 다행히 집까지 무사히 모셔드렸고 이제 떠날 때가 됐다. 떠나기 전에 어색한 침묵을 없애고 싶어 한마디 건넸다. “집이 깔끔하고 좋네요. 밥도 직접 해서 드시나 보네요.” 술이 취해서인지 묵묵부답이기에 “저 이제 가요” 하고 나서려 하는데, “홍 선생, 너무 외로워” 하며 나를 안고 울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고백에 잠시 ‘얼음’이 되었다. 어른이라 생각했던 분이 어쩌면 나를 붙잡고 눈물을 흘릴까? 나도 가볍게 안아드렸다. “괜찮을 거예요. 같이 잘해봐요.” 뭘 잘해보자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냥 잘 살아가자는 취지로 한마디 더 했다. ‘이제 정말 괜찮으시겠지’ 하고 “저 갈게요. 씻고 푹 쉬세요. 다음에 또 봐요” 하고 나섰다. 문 앞을 나서 한참 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우리는 함께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는 여느 때처럼 출근길에 만나서 반갑게 인사하고 악수하는 사이로 돌아갔다. 마주칠 때면 그분의 외로움이 떠오른다. 울고 싶은 마음을 누구에게 전하실까? 때때로 죽음을 생각하는 그의 연락을 외면하지 않는 이웃이 되고 싶다. 가끔 외로울 때, 술 취해 집에 가기 힘들 때 연락할 수 있는 사람으로 오랫동안 남을 수 있으면 좋겠다.
찾아가는 의사 홍종원
September 05, 2020 at 07:34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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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함께 잘 살아갈 수 있을까? : 사회일반 : 사회 : 뉴스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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